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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리일기'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20.05.17 닭발편육
  2. 2020.05.12 상처난 벽

닭발편육

홀로그래피 2020. 5. 17. 20:24



입맛이 까다로운 편은 아니지만 싱싱한 채소나 화려한 향신료에 맛은 아는지라, 기름진 필리핀 음식 가득한 밥상이 보이면 슬그머니 몇 재료만 챙겨 직접 요리를 해 먹어 버릇한지 오래.
필리핀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그런 건 아니었고, 너무 달거나 기름져 처지는 뱃살에 기여하거나, 채소가 부족해 밥만 축내게 되는 것 같아서였다.
또 정리 정돈의 습관인지 냉장고를 열어보고 오래된 먹거리를 보면 아까운 느낌이 드는 탓에, 하지만 식구들에게 먹어 없앨 것을 명하면 노친네 잔소리로 들을 것 같고.
그래서 응급 조치가 필요한 식재료가 보이면, 적당한 메뉴를 찾아 쿠킹으로 직접 소진해 버렸다.
괜찮아, 내꺼는 내가 할께. 알아서 먹을께, 그럴께.

그렇게 세월이 흐르자 어느덧 울집에서 나를 위한 요리는 곤란한 식재료가 있을 때를 제외하고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울집에서 나를 위한 요리는 아무도 하지 않는다.
더욱이 냉장고를 파다가 철 지난 식재료를 모아 음식해서 먹어 버리는 자신을 보면, 가끔 내 위장이 우리집 음식물 쓰레기통인가 하는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이는 만큼 괴롭고 외로워진 음식물 쓰레기통.

집에서 난 특정 식재료 구매 주문은 하지 않는다. 한 외국인의 취향에 따라 식구들 입맛을 재단하려 든다는 불평이 나올까봐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집에 들어온 식재료 중에서 좋아하는 것들을 부지런히 먹어 치우는 것이다.
양파, 마늘 등등인데 절대 강요하지 않아도, 그 공백을 메꾸려 다음 장바구니에 또 들어 있기 마련이다.
한번은 호박과 두부가 있길래 잽싸게 된장찌개를 끓여 후다닥 헤치우고 돌아섰는데, 없어진 식재료를 애타게 찾는 식구들 모습에 한편 통쾌했다.

오늘 장바구니를 보니 닭발이 있더라. 평소 부족에 시달리는 단백질을 삶은 계란으로 메꾸고 있었는데, 좀 다른 맛으로 보충하려 사왔나 보다.
난 이미 이 닭발이 아도보가 될 것을 알고 있었다.
아디다스라 불리는 닭발이 닭장에 갇혀 자기 분뇨를 지근지근 밟으며 절여져 있었던 거라도, 하루 생활에 감칠맛 주는 고마운 음식으로 백번 존경할 것이나, 발가락 또각또각 부러뜨리며 입속에서 쪽쪽 빨다가 뱉어내는 잔모레 같은 발가락 뼈에 침까지 질질 같이 흘러나오는 통에, 이러고도 먹어야 하나 하는 자괴감이 들어, 음식물 쓰레기통에 가까운 내 입임에도 밝발의 발차기를 거부했다.

‘화니의 주방’ 때문이렸다. 요리 덕후의 카리스마에 반해 요리조리 살펴 본 유튜브 채널에서 그의 닭발편육을 떠올렸다.
한번 삶아 잡내를 제거하고 다시 삶아 식힌 후 뼈를 제거하고, 다시 삶아 졸인 후, 식혀서 냉장고에서 굳힌다.
뼈 제거하는 것이 번거롭긴 하지만, 편육이면 그런대로 음식같지 않겠어.
닭발에서 흐르는 콜라겐과 기름을 손에 푹 절이고 나서야 어설게 해체된 닭뼈만 남는데, 이 놈들만 모아 닭뼈 육수를 더 내어 볼까 하다가, 왠지 누군가 이만하면 됬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버리려다가…
냉큼 사라질 두부 한모 정도되는 편육 한 접시에 이 많은 뼈가지라니, 닭들이 자기 발 만들고 키운 그 수고가 애처롭게 공하다.
닭들아 닭들아.
너가 닭인지 내가 닭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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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놀며빌어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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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난 벽

홀로그래피 2020. 5. 12. 14:47

막내 작품으로 포장

Posted by 놀며빌어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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